나훈아 프로필 나이 키 스토리 결혼 이혼 자녀 히트곡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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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 프로필

안녕하세요~오늘은 가수 나훈아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나훈아는 2024년 2월 27일 소속사를 통해 4월~7월 전국 공연이 마지막 공연이라고 전하면서 "박수칠 때 떠난다" '가황' 나훈아가 가요계 은퇴계를 선언하였습니다. 27일 나훈아 소속사 예아라 예소리를 통해 4월부터 진행하는 전국 순회 공연을 끝으로 마이크를 내려놓는다고 밝혔습니다.

출처나훈아나무위키

나훈아의 본명은 최홍기입니다. 1947년 2월 11일(77세)이며 경주 최씨입니다. 신체 175cm, 몸무게 71kg, 혈액형 B형입니다. 가족은 어머니, 사촌동생 나진기, 슬하 1남 1녀 입니다. 학력은 초량초등학교(졸업),대동중학교(졸업),서라벌예술고등학교(졸업)입니다. 병역은 대한민국 공군 병장으로 만기전역하였습니다. 나훈아는 1968년 노래 <내 사랑>으로 데뷔하였습니다.

 

나훈아 갤러리

출처나훈아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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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 스토리

나훈아는 어린 시절부터 체력과 폐활량, 근력이 남달랐다고 합니다. 저음을 불러도 단순히 목소리 내리깔며 부르는 게 아닌, 힘있는 저음처리였기 때문에, 이를 보고 반하는 음악팬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무역선 선원이었기 때문에 매우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1950년대에 유년기를 보냈음에도 부친이 외국에서 구매해 온 축음기가 있었을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또한 그 덕에 형과 더불어 고향 부산에서 서울특별시의 서라이벌예술고등학교로 유학도 올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보듯 원래는 성악가를 목표로 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작곡가 심형섭이 오아시스 레코드의 손진석 사장에게 소개해줬고, 그라 LP판을 무료로 녹음시켜주겠다고 하면서 대중가요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원래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우등생이었던 그가 꼭 의사나 판검사 같은 엘리트 직업을 갖기를 바랬던 그의 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공연료가 부르는 게 값인 단 3명 뿐인 가수 중 한분입니다. 다른 두분은 조용필, 서태지입니다. 음악활동 외 방송 출연이나 미디어 노출을 극도로 제한하는 것이 셋의 공통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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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 출연작

나훈아는 트로트 보컬로 주로 유명세를 탔지만, 수많은 히트곡을 직접 작곡해서 히트시킨 싱어송라이터이며,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노래방반주기에 수록된 곡이 가장 많은 가수입니다. 1996년 '천리길'을 발표하며 데뷔하였는데요. 데뷔년도를 빨리 올리기 위한 이야기가 있지만 실물 음반은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실물 레코딩 노래는 1968년 8월 16일 '내 사랑'이라고 합니다. 천리길은 1969년 5월 29일 발표되었지만 2020년 KBS에서 진행한 콘서트 준비를 하면서 본인이 데뷔 54년 가수 생활이라고 언급 한 것을 보아 본인은 1966년 데뷔를 확실시 하였습니다. 히트곡만 무려 120곡이 넘어 나훈아는 히트곡의 숫자에서도 국내 최다는 물론이고, 앨범 발표수만 해도 무려 200장 이상, 800곡 이상의 자작곡을 포함해서 2600곡 정도의 취입곡을 자랑하는 가수입니다. 이처럼 나훈아는 트롯의 황제, 가황이라는 별명이 정말 잘 어울리는 가수입니다. 묵직하고 중후함이 느껴지는 저음과 특유의 절묘한 고음, 이를 활용하면서 나오는 전매특허인 꺾기로 대표되는 나훈아 특유의 창법은 가요계의 엄청남 충격을 가져왔으며, 수많은 가짜 나훈아를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유달리 나훈아의 노래는 가수가 자기만의 색을 입혀서 노래하는 것이 엄청나게 부담되는 노래로 유명합니다. 나훈아의 노래를 소화하다 보면 자칫하면 어설픈 모창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만큼이나 나훈아의 창법은 엄청나게 독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훈아 결혼 및 자녀

나훈아는 3번의 결혼을 하였는데요. 현재 마지막 3번째 부인과도 이혼한 상태입니다. 첫번째 부인 이숙희랑은 1973년~1975년의 짧은 결혼 생활로 슬하에 자녀는 없습니다. 두번째 결혼은 영화배우 김지미랑 했는데요. 두 사람은 오랜 기간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나훈아는 훗날 '김지미는 나를 남자로 만들어 준 사람' 이라고 했습니다. 김지미도 '진정 남편으로 믿고 의지할 남자'였다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은 1976년~1982년까지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슬하에 자녀는 없었다고 합니다. 김지미와 이혼 후 가수 정수경과 동거를 하다 아들을 얻었고, 1983년 연말에 3번째 결혼을 하였습니다. 1988년 딸이 태어났으며, 정수경이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1993년 하와이로 거처를 옮기며 나훈아는 기러기 아빠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2007년 아들의 결혼식에 나훈아가 불참한 이후로 둘의 사이는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나훈아는 결혼 생활 33년만에 이혼하게 되면서 2011년 8월 처음으로 이혼 소송이 시작되었고, 나훈아가 오랜 기간 연락이 되지 않고 생활비도 주지 않았으며, 불륜을 저질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2013년 9월 대법원에서는 부정행위를 인정할 증걱가 부족하다며 기각 결정을 내리자 2014년 10월 다시 소송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세번째 부인의 이혼 청구 소송은 패소하게 되었는데요. 법원은 두 부부에게 모두 결혼 생활 파탄의 책임이 있다고 밝히면서 나훈아는 정수경 전 부인에게 재산 분할금 12억 1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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